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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집》에 대하여

《경산집》에 대하여

《경산집》에 대하여

《경산집》은 19세기의 학자이며 문인이였던 정원용(1783-1873)의 시문집이다.

《경산집》은 정원용이 죽은지 20여년이 지난 1896년에 손자 정범조에 의하여 편집출판되였다.

23권 11책으로 되여있으며 그중에서 20권은 원집이고 3권은 부록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정원용은 조선봉건왕조시기 다섯 왕대에 걸치는 70여년기간 벼슬을 하면서 여섯차례의 령의정을 지냈고 20여년간 국가의 중요한 저술에 참여한 관료이며 학자였다.

《경산집》에는 저자가 관료를 지내면서 봉건왕권의 유지강화를 위하여 쓴 산문들과 다양한 문체의 글들이 들어있다.

또한 정원용이 궁중연회에서 읊었거나 평양을 비롯하여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유람하면서 즉흥적으로 읊은 운문들이 편집되여있다.

시문집《경산집》의 글들에는 조선봉건왕조말기의 국가정무의 일단이 반영되여있어 당시 정치형편과 사회경제형편을 분석할수 있으며 비록 미약하기는 해도 당시 인민들의 생활처지도 엿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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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유선암의 위험인자

유선암의 위험인자

유선암의 위험인자

유선암의 위험인자

- 내분비인자

유선암발생에서 주요위험인자이다. 여기서 녀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페경후 갱년기증상을 치료할 목적으로 적용하는 호르몬보충료법도 위험도를 높인다.

- 나이

위험인자중의 하나이다. 30~75살에 질병발생빈도가 점차적으로 증가한다.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세포분렬에서 이상이 생긴다.

- 유전인자

근친가족중 유선암환자가 있는 경우 하나의 위험인자로 된다. 어머니와 언니가 유선암인 경우 위험률은 높다. 이러한 유전자를 가진 녀성 2명당 1명은 70살까지 사는 기간에 유선암에 걸린다.

- 이전에 유선량성종양을 앓은것

이전에 유선섬유선종과 같은 량성종양을 수술한적이 있거나 유선증을 치료하지 않고 오래 경과한 경우 위험도가 높다.

- 방사선

자료에 의하면 방사선피해를 받은 녀성들속에서 유선암발생률이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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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우리 나라에서 양력을 쓰기 시작한 날

우리 나라에서 양력을 쓰기 시작한 날

우리 나라에서 양력을 쓰기 시작한 날

우리 나라에서 양력을 쓰기 시작한 날

우리 나라에서 양력을 쓰기 전에는 음력을 써왔다.

그러다가 나라의 근대화를 지향한 갑오개혁후인 1895년 11월 17일부터 양력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날이 양력으로 1896년 1월 1일이였다.

따라서 그 이전의 력사적사건, 사실 등을 양력으로 환산할 때에는 달뿐 아니라 해가 달라지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그러한 실례를 우리 민족의 고유한 글자인 《훈민정음》이 창제된 년대를 대표적으로 들수 있다.

그것이 창제된것은 음력으로 1443년 12월인데 양력으로는 1444년 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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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생선회와 생강

생선회와 생강

생선회와 생강

생선회와 생강

생강에는 매운 성분과 함께 티브스나 급성설사증 등에 살균작용을 하는 성분들이 들어있다.

또한 생강은 식중독균인 장염비브리오에 대한 살균력도 가지고있다. 때문에 생선회에 생강을 넣으면 식중독을 예방할수 있다.

생강은 또한 생선의 비린내를 줄이는 동시에 소화흡수가 잘되게 하는 작용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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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수나라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수나라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수나라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수나라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을지문덕(6세기말엽-7세기초엽)은 고구려시기의 애국명장이다.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 등 무예를 닦는데 힘썼고 병서를 공부하였으며 대신급의 높은 벼슬에까지 올랐다.

을지문덕은 612년 수나라 양제가 당시까지 세계적으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었던 가장 큰 규모인 300만명의 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륙지와 바다로부터 고구려에 침입하여왔을 때 고구려군의 총지휘관으로 있었다.

을지문덕은 자신이 직접 적진에 들어가 굶주리고 지쳐 사기가 떨어지고 장수들사이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적정을 알아내고 돌아와 그 약점을 리용하여 청야전술, 유인전술로 소멸할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인민들을 소개시키고 침략자들에게 식량과 물을 주지 않도록 대책을 취하였다.

한편 적들과 여러 차례 싸우면서 피로한 적들을 계속 유인하여 국내깊이로 끌어들이였다.

을지문덕의 전술에 걸려든 적들은 무모하게도 평양성 30리밖까지 기여들었다.

그러나 굶주리고 지친데다 저들의 수군이 이미 전멸되였다는것을 알게 된 적들은 철옹성같은 평양성을 눈앞에 보며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이때 을지문덕은 적장 우중문에게 그 몰골을 야유하는 풍자시 한수를 보내였다.

그 시를 받아든 우중문은 분통이 터져올라 몸부림치며 치를 떨었으나 더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것을 알고 침략군을 몰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을지문덕은 도망치는 적에 대한 추격전을 벌리였으며 살수로 몰아가 포위섬멸전으로 몰살시켰다.

이 싸움에서 살아서 돌아간자는 기병 2 000명뿐이였다.

이 싸움을 《살수대첩》이라고 한다.

수나라가 일으킨 전쟁은 1년도 못가서 고구려의 대승리로 끝났다.

을지문덕의 애국적업적은 그후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는 우리 인민들의 투쟁에서 고무적힘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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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메추리고기와 알의 영양학적가치와 약리작용

메추리고기와 알의 영양학적가치와 약리작용

메추리고기와 알의 영양학적가치와 약리작용

메추리고기와 알의 영양학적가치와 약리작용

메추리고기는 단백질, 비타민이 많이 포함되여있을뿐 아니라 닭고기에 비하여 몸안에서의 소화흡수률이 좋으므로 임신부, 늙은이, 체질이 약한 사람들에게 보다 좋은 식료품으로 된다. 그러므로 메추리는 《동물인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메추리알은 닭알에 비해 단백질과 레시틴, 각종 비타민, 광물질이 더 많이 함유되여있다.

메추리알 한알의 영양가치는 닭알 3알의 영양가치와 맞먹는다고 한다.

메추리고기와 알은 약으로도 리용할수 있다. 메추리고기나 알은 맛이 달고 성질이 온화하여 오장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허약자와 빈혈, 결핵, 설사 등 신진대사장애가 있는 환자들이 먹으면 큰 효과를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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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누름식보온병을 리용할 때

누름식보온병을 리용할 때

누름식보온병을 리용할 때

누름식보온병을 리용할 때

끓는 물을 보온병에 넣으면 침전물이 병밑에 침적되게 된다.

손으로 보온병을 누르면 누름식보온병밑의 침전물이 먼저 빨대에 빨려나온다.

오래동안 침전물이 섞인 물을 마시면 건강에 매우 해롭다.

일반보온병은 물이 우에서 아래로 흘러가므로 바닥의 침전물이 잘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누름식보온병을 리용할 때에는 눌러서 나온 물을 좀 놓아두었다가 침전물이 가라앉은 다음 물을 마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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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기침증상을 완화시키는 4가지 방법

기침증상을 완화시키는 4가지 방법

기침증상을 완화시키는 4가지 방법

기침증상을 완화시키는 4가지 방법

1. 감기와 상기도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한다.

2. 실내습도를 유지하는데 주의를 돌려야 한다. 물을 담은 그릇을 방에 두어 잠잘 때 호흡기도가 너무 건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튀긴 음식이나 매운 음식을 적게 먹어야 한다. 평소에 무우와 양파, 귤과 같은 남새와 과일을 많이 먹는것이 좋다.

4. 알레르겐을 최대한 멀리해야 한다.

과민성기침증상이 있는 사람은 외출마스크를 착용하여 호흡기를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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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고구려경제의 구성요소-짐승사냥

고구려경제의 구성요소-짐승사냥

고구려경제의 구성요소-짐승사냥

고구려경제의 구성요소-짐승사냥

고구려에서 짐승사냥은 경제의 중요구성부분을 이루는 한 분야였다.

짐승사냥은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첫날부터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창조적활동과정에 발생한 사회적분업의 하나였다.

고구려에서 짐승사냥을 매우 중시하고 적극 장려하게 된것은 고구려의 자연지리적조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여있었다.

깊은 산과 골짜기가 많은 반면에 넓은 벌과 비옥한 농경지가 적었던 건국초기 고구려의 자연지리적환경은 사람들이 아무리 힘껏 농사를 지어도 자급자족하기에는 부족한 형편에 놓여있었다.

따라서 건국초기부터 짐승사냥은 고구려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생산활동의 하나로 되였다.

건국초기뿐 아니라 령역확장과정에 광대한 령역을 차지한 이후에도 사냥은 여전히 고구려경제에서 중요생산부문의 하나로 되였다.

벌방과 평지대사람들은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 살아갈수 있었지만 산간지대에서는 농사지을 땅이 얼마 없는것으로 하여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것으로 하여 고구려에는 사냥을 기본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생업활동으로서의 짐승사냥은 건국초기부터 말기까지 계속 존재하게 되였다.

고구려의 짐승사냥방법은 여러 벽화무덤들의 벽화를 통하여 알수 있는바와 같이 기본은 말을 타고 활과 창으로 잡는것이였다.

고구려무덤의 벽화들에는 말을 탄 사냥군(또는 무사)들이 산발을 주름잡으며 질풍같이 내달리면서 달아나는 사슴과 범들을 활로 쏘고 창으로 던져 잡는 통쾌한 장면들이 많이 그려져있는데 이것은 고구려시기 말을 타고 활과 창으로 짐승을 잡는것이 사냥의 기본방법으로 되여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또한 사냥방법은 매로 메토끼나 여우, 꿩, 메추리 등과 같은 작은 짐승이나 날짐승들을 잡는것인데 매를 길들이는것이 품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사냥에서 성공률이 매우 높은것으로 하여 우수한 사냥방법이라고 할수 있다.

사회적으로 사냥이 적극 장려되고 우수한 사냥방법들이 많이 적용됨에 따라 고구려에서는 범, 곰, 메돼지, 사슴, 노루 등 많은 산짐승들을 잡게 되였고 그 과정에 고기와 털가죽, 약재들을 수많이 생산리용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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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건강에 유익한 여러가지 차

건강에 유익한 여러가지 차

건강에 유익한 여러가지 차

건강에 유익한 여러가지 차

차는 정신적, 육체적피로를 풀어주고 유기체의 활동능력을 높여주는것으로 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강음료이다.

우리 나라에는 인삼, 오미자, 오갈피 등을 가지고 만든 여러가지 건강음료가 있는데 심장과 위를 든든하게 하여주는 약효성분들이 많이 들어있고 그 맛과 향기가 독특한것으로 하여 널리 알려져있다.

인삼차 하나만 놓고보아도 강심강장제로뿐 아니라 소화기, 신경계통의 질병을 치료하는데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자료에 의하면 홍삼은 색이 불그스레한 가공인삼을 말하는데 높은 온도에서 쪄서 말린것으로 하여 인삼보다 그 약효가 몇배나 더 높다고 한다.

인체의 면역을 보다 높여주는 성분들을 다량함유하고있을뿐 아니라 강장작용도 뚜렷한 개성고려홍삼추출액은 여러가지 질병을 예방하며 특히 암성질병과 물질대사성질병, 고지혈증 등의 치료에 도움을 준다.

구기자차는 약간 새큼달달하면서 부드러운 맛을 내는 건강음료의 하나이다.

구기자차는 몸을 보해주는 제영양성강장제로서 당뇨병과 페결핵, 페염에 대한 약리적특성도 가지고있으므로 예로부터 약재로 널리 리용되여왔다.

구기자차는 흥분성을 띠고 심신을 상쾌하게 하며 피로를 빨리 풀어줄뿐 아니라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하므로 일상적으로 물대신에 구기자차를 마시면 건강에 아주 좋다.

오미자차는 허약, 무력증, 피로, 식은땀나기, 영양실조증에 보약으로 쓰며 기관지천식, 기관지염, 간염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건강음료이다.

오미자차는 더운 상태에서 마실수도 있고 차게 식혀서 마실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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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락화생으로 기침을 치료하는 방법

락화생으로 기침을 치료하는 방법

락화생으로 기침을 치료하는 방법

락화생으로 기침을 치료하는 방법

- 락화생 한줌을 짓찧고 우유와 함께 끓인 후 따뜻할 때 마신다.

하루에 2~3번씩 마시면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삭일수 있다.

- 락화생 30g, 대추 30g, 꿀 30g, 물을 넣고 끓인 후 하루에 2번씩 락화생과 대추를 먹고 그 물을 마신다.

며칠만 먹으면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삭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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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윤선도

윤선도

윤선도

윤선도

윤선도(1587―1671)는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시인이다.

자는 약이이고 호는 고산, 충헌이다.

17세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시조시인의 한사람이다.

1612년에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호조좌랑, 한성서윤, 시강원문학, 성주현감, 례조참의 등의 벼슬을 하였다.

그는 벼슬살이에 나선지 4년만인 1616년으로부터 시작하여 1638년과 1660년 등 세차례에 걸쳐 류배살이를 하였다.

윤선도는 곡절많은 생활과정에 당대 사회현실의 모순과 불합리를 직접 보게 되고 통치배들의 부패무능과 당파싸움의 추악성을 깊이 깨닫게 됨에 따라 정계생활에 대한 뜻을 버리고 산촌에 숨어 《깨끗하게》 살려는 지향을 품게 되였다.

윤선도는 외적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였을 때 고향에서 수백명의 청장년들과 함께 직접 싸움의 길에 나서기도 하였고 봉건정부가 적국과 치욕적인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통치배들을 저주하면서 보길도라는 섬으로 들어갔던적도 있었으나 생의 말년에는 대체로 고향에서 은거생활을 하다가 여생을 마치였다.

윤선도는 일생동안에 여러가지 형태의 시가작품들과 글들을 지었는데 문학사적으로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것은 국어시가였다.

국어시가들로서 현재까지 전하는것은 시조 35수와 장시 《어부사시사》 한편이 있다.

이가운데서 널리 알려진 대표적작품은 그가 두번째로 류배살이를 하고 고향 해남에 와서 살 때에 창작한 《산중신곡》(1642년)과 《산중속신곡》(1645년), 《어부사시사》 등 이다.

윤선도는 자신의 계급적 및 사상적제한성으로 하여 작품들에서 은일사상을 강조하고 당대 사회현실의 부정면을 폭로한 비판적기백이 높은 작품들을 남기지 못하였으나 통치배들이 비속하다고 천시하던 우리 말과 글로써 자연풍경을 노래한 우수한 작품들을 창작함으로써 민족시가의 발전 특히 시조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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