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1587―1671)는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시인이다.
자는 약이이고 호는 고산, 충헌이다.
17세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시조시인의 한사람이다.
1612년에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호조좌랑, 한성서윤, 시강원문학, 성주현감, 례조참의 등의 벼슬을 하였다.
그는 벼슬살이에 나선지 4년만인 1616년으로부터 시작하여 1638년과 1660년 등 세차례에 걸쳐 류배살이를 하였다.
윤선도는 곡절많은 생활과정에 당대 사회현실의 모순과 불합리를 직접 보게 되고 통치배들의 부패무능과 당파싸움의 추악성을 깊이 깨닫게 됨에 따라 정계생활에 대한 뜻을 버리고 산촌에 숨어 《깨끗하게》 살려는 지향을 품게 되였다.
윤선도는 외적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였을 때 고향에서 수백명의 청장년들과 함께 직접 싸움의 길에 나서기도 하였고 봉건정부가 적국과 치욕적인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통치배들을 저주하면서 보길도라는 섬으로 들어갔던적도 있었으나 생의 말년에는 대체로 고향에서 은거생활을 하다가 여생을 마치였다.
윤선도는 일생동안에 여러가지 형태의 시가작품들과 글들을 지었는데 문학사적으로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것은 국어시가였다.
국어시가들로서 현재까지 전하는것은 시조 35수와 장시 《어부사시사》 한편이 있다.
이가운데서 널리 알려진 대표적작품은 그가 두번째로 류배살이를 하고 고향 해남에 와서 살 때에 창작한 《산중신곡》(1642년)과 《산중속신곡》(1645년), 《어부사시사》 등 이다.
윤선도는 자신의 계급적 및 사상적제한성으로 하여 작품들에서 은일사상을 강조하고 당대 사회현실의 부정면을 폭로한 비판적기백이 높은 작품들을 남기지 못하였으나 통치배들이 비속하다고 천시하던 우리 말과 글로써 자연풍경을 노래한 우수한 작품들을 창작함으로써 민족시가의 발전 특히 시조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