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성

구주성

평안북도 구성시에 있는 구주성은 고려시기 구주대승리로 이름높은 성이다.

구성은 10세기후반기부터 13세기까지 구주라고 불렀다.

구주라는 이름은 산줄기들이 가로세로 시내를 내리지른 모양이 마치 거부기잔등같다는 뜻에서 붙여진것이다.

고려봉건국가는 구주가 고려 서북지방의 요충지였으므로 구주성을 돌로 쌓고 그후 이곳을 정치,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시하였으며 1231년에는 정원대도호부로 승격시키기도 하였다.

구주성은 994년 즉 고려초기에 처음 쌓았는데 내성(둘레 약 5 023m)과 외성(둘레 약 1 480m)으로 이루어져있다.

내성은 옛 구성읍을 에워싸고 쌓은것이며 외성은 내성의 서북쪽에 덧붙여 쌓은것이다.

내성의 동쪽벽과 북쪽벽은 동문천쪽의 절벽을 따라 쌓았으며 서쪽벽은 릉선의 바깥면에 대체로 외면쌓기방법으로 쌓고 남쪽의 평지대에 련결된 일부분만은 량면쌓기방법으로 쌓았다.

굴곡이 심한 릉선의 등성이를 따라 구불구불 쌓은 성벽에서 바깥으로 돌출한 부분에는 치를 설치하였던 자리가 지금도 20여군데나 뚜렷이 남아있다.

내성의 동, 서, 남, 북쪽벽과 외성의 서쪽벽에는 문터가 있다. 그 가운데서 내성남문에는 무지개문길이 있는 축대우에 정면 3간, 측면 3간, 포식두공에 합각지붕으로 된 웅장한 2층문루가 서있었다. 내성과 외성사이에는 성벽밑으로 드나들게 되여있는 지하문이 있다.

구주성은 고려시기에 외적들을 물리치는데서 큰 역할을 하였다.

1231년 몽골군대가 침입하였을 때에도 고려군은 박서의 지휘밑에 용감히 싸워 구주성을 지켜내였다.

구주성방어전투는 적들의 제1차침입을 반대하는 전쟁승리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였을뿐 아니라 그후 6차례에 걸치는 전쟁에서 성방어전투의 모범으로 되였다.

구주성은 이렇듯 자랑스러운 투쟁력사를 가지고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