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도화서의 정비와 화가들의 신분구성

15세기 도화서의 정비와 화가들의 신분구성

15세기에 들어와 전문회화창작기관인 도화서가 정비되고 회화창작을 적극적으로 벌려나갈수 있는 조건들이 마련되였다.

15세기 후반기 정비된 도화서의 정원수는 제주 1명(례조판서가 겸임함.), 별제 2명, 화가 20명, 장공인 15명, 차비노 2명, 근수노 5명, 기타 2명으로서 47명이였다.

15세기 도화서 화가들가운데서 많은 수를 차지한것은 서얼(량반의 첩자식들)이였다.

15세기에 들어와 서얼들은 심한 차별대우를 받고 량반들로부터 천시당하였다.

서얼들의 차별문제가 제기된것은 어느 일개인의 복수심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중앙집권적인 신분차별정책에 근본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15세기 후반기에 중인신분이 형성되면서 량반의 첩자식들이 도화서를 비롯한 기술부문에 종사하게 되였으며 그 직업은 자식들에게 세습되였다.

또한 도화서 화가들은 봉건국가로부터 량반들이 받는 벼슬과는 다른 잡직벼슬인 체아직을 받았다.

이처럼 15세기에 조선봉건왕조는 전문미술창작기관인 도화서를 정비한데 기초하여 화가들에게 잡직벼슬을 주고 그 직업을 세습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조선봉건왕조가 도화서를 저들의 리해관계에 따라 정비하였으며 신분적으로 그 직업을 천시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그런것으로 하여 15세기에 회화는 인민들의 자주적인 지향과 요구, 생활의 본질과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을 반영한 사실주의회화발전에로 나아가는데서 적지 않은 지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