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봉건왕조시기 미술가양성은 국가기관에 의한 양성체계와 개별적으로 진행된 양성체계에 의해 진행되였다.
무엇보다도 국가적으로 미술가들을 양성하는 체계가 확립되여있었다.
조선봉건왕조의 통치배들은 성립초기 선행한 고려시기의 제도를 거의 그대로 계승하면서 중앙에 도화원을 두고 회화를 담당관할하도록 하였다.
고려시기부터 존재해오던 도화원은 15세기 중엽이후에 도화서로 개칭되였으며 이에 따라 그 체계와 임무분담이 명백해졌다.
도화서에서는 미술작품창작외에도 정연한 후비양성체계를 가지고 화원후비들을 전망성있게 양성할수 있었다.
다음으로 개별적으로 미술가들을 양성하는 체계도 있었다.
조선봉건왕조시기 미술가양성은 국가기구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서당이나 절간, 개별적미술가들에 의해서도 진행되였으며 그 과정에 재능있는 미술가들이 적지 않게 배출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 미술가양성에서 주목되는것은 그것이 가정교육, 개별교육의 형태로도 진행되였다는것이다.
조선봉건왕조시기 많은 화가들이 이러한 가정교육, 개별교육형태를 거쳐 이름난 미술가로 자라나고 국가가 운영하는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뛰여난 공예가, 조각가 등도 수공업자들의 가문에서 세습적으로 양성되였다는것을 념두에 둘 때 이 시기 개별적인 미술교육이 미술가양성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있었다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