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의 본명은 최운학(성장한 후에는 최여신)인데 그는 불교의 중이였으므로 법명은 휴정이라고 하였다.
1520년 안주고을의 빈한한 량반의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9살때에 부모를 잃고 여기저기로 떠돌아다니면서 당시 사회의 불평 등을 목격하게 되였으며 그로부터 어지러운 정계에 나서기를 단념하고 18살에 중이 되였다.
서산대사는 우리 나라의 명승지들을 편답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고 여기저기 큰절을 찾아다니며 불교의 교리도 착실히 습득하였다.
1592년 왜적들이 불시에 달려들자 70살이 넘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서산대사는 사랑하는 이 나라가 왜적들에게 짓밟히는것을 어찌 보고만 있으며 온 강산이 멸적의 기세로 일떠섰는데 속세를 떠난 중이라고 하여 닥쳐온 이 재난을 보고만 있겠는가고 하면서 싸움의 길에 나섰다.
서산대사는 늙고 병들어 싸울수 없는자는 모두 거처하는 절간에 남아서 조국수호와 왜적격멸을 위하여 정성껏 불공을 올리며 싸울수 있는 장정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무장을 들고 의병에 궐기하라고 절절히 호소하였다.
서산대사는 승병을 거느리고 평양으로 진군하여 평양성탈환전투에도 참가하였다.
우리 인민들은 묘향산 보현사와 금강산 유점사에 부도(유골을 넣어두고 추모하거나 기념하는 건축물)를 세우고 서산대사의 위훈을 길이 전하여왔다.
우리 민족의 정통무도인 태권도에도 서산이라는 명칭을 가진 틀동작이 있어 서산대사의 애국적장거는 길이 전해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