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시기부터 생산된 조선비단

고조선시기부터 생산된 조선비단

고조선사람들은 일찍부터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쳤는데 고조선의 고유한 석잠누에에서 얻은 명주실로 짠 비단은 그 질이 매우 좋아 주변나라들에 널리 알려졌다.

대성산의 고구려성벽터에서 발굴된 누에고치실로 짠 비단천은 성글게 짠 평짜임조직으로서 실오리가 고르롭고 평활하였는데 그것은 당시의 비단짜기기술수준이 매우 높았다는것을 잘 보여준다.

고려시기에 들어와 비단의 종류가 더욱 늘어나고 그 질도 높았다.

옛 기록에 의하면 고려비단은 그 종류가 무려 70여종이나 되였는데 색갈과 무늬가 화려하고 질이 탐탁한것으로 하여 다른 나라에 널리 수출되였다.

고려비단은 고려자기, 고려종이, 고려먹 등과 함께 멀리 아라비아반도에까지 수출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여러가지 비단천들을 짰다.